'활동적'이란 무슨 뜻일까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랑가 중 한 사람인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현대인은 병적으로 수동적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개념에 뭔가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활동적'이라는 개념과 '수동적'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뜻일 겁니다.
활동성과 수동성
우리 안에 깃든 정신력이란 이성, 감정, 미의 감수성을 의미합니다. 활동성은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고, 강요된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에게 깃든 창조적 힘에서 나오는 어떤 것이 우리 안에서 탄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 형태의 활동성은 다름 아닌 관조적인 삶, 다시 말해 진리 추구에 있다고 말합니다. 마이스터 에크할트는 활동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만 그가 말하는 활동성은 무언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의 정신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과거 전통적 의미와 현대 산업적 의미의 활동성은 무엇이 결정적으로 다를까요? 산업 시대 이전 행위는 자유의 동기가 특징이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활동성은 강제 동기가 특징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자유라는 말을 무척 많이 사용하며, 그 말을 이용해 선전도 많이 합니다. 인문학의 전통의 의미에서 실제로 자유의 근본으로 파고들어 가보면 자유란 강제 없이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삶이 강요에 따른다면 그 사람의 행동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현대의 노동자는 노동만 팔지만 대체로 기업가가 부과한 조건에서 노동을 팔도록 강요당합니다. 노동자는 거대 조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대변합니다. 가끔 그 조직이 그에게 조직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할 것인가 아니면 굶어 죽을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뒷배가, 자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외부 강제의 형태입니다. 두 번째 형태의 강제는 내적 강제이며 훨씬 더 중요하지만 대부분이 의식하지 못합니다. 큰 내적 강제 중 하나는 바로 불안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심한 공포와 불안이 담겨 있습니다. 온갖 것이 다 무섭습니다. 자신이 불안하고, 삶이 무의미해서 겁나며, 경쟁이 두렵고, 부모님이, 자식들이 겁나고, 낯선 사람은 모조로 무서우며, 자기 남편이라 아내가 겁난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에서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불안이 자신을 몰아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에서, 불안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며, 따라서 단 한순간도 자신이 불안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일하고 또 일합니다. 어떤 사람이 직업을 잘못 택해서 불안해합니다. 그러면 뭘 해야 할까요? 새 직업을 택하면 어떤지 고민하는 대신 그는 기존 직업으로 더 많이 일해서 자신과 자신의 의혹을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은 행위로 도망칩니다. 꼭 일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이 끝나면 운동을 하고 클럽에 갑니다. 그저 분주하기만 하면 됩니다. 단 한 순간도 고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다시 불안이 고개를 내밀 테니까요. 그것이 강박신경증 같을 때도 정말 많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활동성은 전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는 자유롭지도 즐겁지도 흥미를 느끼지도, 실제로 활동하지도 않습니다. 외부의 강제, 대부분은 내면의 강제 때문에 자신이 행동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자유롭지 않은 활동성, 다시 말해 분주함은 산업사회 이전과 대비되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와 꼭 들어맞습니다. 산업 시대에는 물건의 최대 생산과 최대 소비가 목표입니다. 인간의 최고의 자산, 즉 경제적. 기술적 진보에 쓰이는 도구가 됩니다. 존재가 아니라 소유에 쓰이는 도구가 됩니다. 따라서 인간이 어떤 동기에서 활동적인지가 중요하지 않고 결과가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행동의 개인적. 사회적 유용성뿐입니다. 심지어 강제 활동이 경제적이며, 적어도 겉보기에는 자유에서 나온 활동보다 더 유익하고 단순하며 효과적일 때도 적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일이 단조롭고 의미 없고 따분하고 재미가 없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물론 그 사실을 의식하지는 못합니다. 자신이 고통당한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 증상이 고통당한다고 말해줍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운지, 자기 일이 얼마나 단조로운지 의식하면 자기 상황을 모두 바꿔야 하고 사회적 변화를 바라야 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에 그는 차라리 즐겁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일, 즉 강제 노동의 고통을 인식하지 않고 일을 더 많이 해서 무감각해지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심각한 자기기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매우 활동적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매우 수동적인 것입니다. 활동성이 스스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지시하고 조종하는 활동성이기 때문입니다. 수동성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누가 봐도 확실하며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소비하라는 강제, 소비하는 인간이 되라는 강제입니다. 소비하는 인간은 내면이 공허하고 수동적이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안으로 불어넣어야 합니다. 수동성 탓에 실제로는 공허하지만 꽉 찼다는 허울을 선사할 물건으로 자신을 채워야 합니다. 세계를 지배한다고 잘난 척하는 어른임에도 그는 젖을 달라고 우는 영원한 젖먹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활동적이지만 그러고 나면 그만큼 게으르고 싶다는 갈망을 느낍니다. 물론 활동하고 나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역시 다른 형태의 강박적인 활동일 때가 많습니다.
가만히 바라보기. 들어보기. 명상하기
올바른 활동성을 키워야 합니다. 관조와 상반되지 않으며 자기 발전을 지원하는 활동성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생존하려면 지금처럼 그냥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시작은 깨달음입니다. 다음 걸음은 진정한 활동성의 연습입니다. 아마도 그 시작은 한번 가만히 앉아 바라보려는, 들어보려는, 명상하려는 노력일 것입니다. 이건 절대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말은 정말 쉬워 보입니다. 가만히 좀 앉아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답할 것입니다. "그게 뭐 특별하다고.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래?" 하지만 한번 해보면 당신이 얼마나 쉼 없는 행동의 강제와 분주함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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