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목표가 아닙니다. 행복은 도구입니다. 행복이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나 생을 마감하는 어느 순간에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오늘 하루하루에도 마땅히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행복은 달려가면서 인고해야 하는, 그래서 끝내 어느 순간에 만나야 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오늘 하루하루 우리가 소소하게 느껴야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행복은 기쁨의 빈도
실제로 많은 사람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언제 그 지점이 오는지도 모르는데 행복이라는 걸 멀리 밀어냅니다. 행복은 늘 저기 어딘가 멀리 있어요. 20년, 30년쯤 행복하지 않고 고통을 참아가며 인고의 세월을 거치면 그날이 올 거라고,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늘을 쾌락만 탐닉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먼 미래, 기약도 없이 뜬구름 같은 행복을 위해 오늘 하루를 지나치게 고통스럽게 살고, 인고의 세월을 참아내면 먼 훗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명백한 착각입니다. 몇 년만 참으면 분명 지금보다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맴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큰 행복보다는 작은 행복 여러 번이 훨씬 중요합니다. 작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훨씬 오래 생존한다고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동물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오래 살아남아야 내 후손도 남기고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서 멸종하지 않습니다. 내 생존이 길어지는 게 결국은 인류의 생존에도 기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의 생명을 연장하는 건 크게 보면 우리 인간이라는 종 전체에 도움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행복이 어떻게 수명을 연장하는 걸까요? 가슴 벅찬 감동적인 행복 한두 번이 인간을 오래 갈게 할까요? 연구를 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주관적 안녕감이라는 이름 아래 행복 연구를 주도한 심리학자 에드 디너 교수가 강조하는 행복의 법칙입니다. 100점짜리 행복을 열흘에 한 번 느끼는 사람과 10점짜리 행복을 매일매일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요? 행복의 총합은 둘 다 100점이니 둘 다 똑같이 행복할까요? 연구에 따르면 총합은 같아도 10점짜리 행복을 매일매일 느끼는 사람이 훨씬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습니다. 행복에 관련된 연구를 보면 인간관계도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걸 알게 됩니다. '나한테 큰 것을 주지 못하더라도 작은 것을 기꺼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주위에 있는 것, 주변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요. 또한 더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은 행복이 창의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행복을 주는 사람들은 창의적으로 살고 이 세상을 바꿀 만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관계주의가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창의적인 것 좀 갖고 와봐" 이러면 못 가져오는데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좀 도와줘"라고 하면 그때 어마어마하게 창의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을 돕는 것, 이타성이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요소가 됩니다. 이타성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어떤 일에 참여할 여지를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접근 방식을 바꾸게 되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능력이 길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타적인 사람,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창의적인 겁니다. 이타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 지금은 손해를 보겠지만, 언젠가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사소한 하나'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행복의 빈도가 높아지겠죠. 여러 심리학 연구를 살펴보면, 행복한 사람은 이타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훨씬 더 친절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높고,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행복해지고, 그 행복해진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이타성과 행복의 순환고리가 만들어집니다. 나의 인간관계 안에 있는 사람 중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경쟁자로 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언젠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나에게 작은 행복 하나를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혹은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어떨까요? 나의 작은 이타적인 행동이 복잡한 인간관계 문제를 풀어줄 실마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변화
인생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불행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리고 인생을 가장 허망하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의성은 상수처럼 보이지만 변수입니다. 타고나는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의 창의성이 달라집니다. 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 잘 지내는 능력도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 아니라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일을 힘들어하거나 낙관주의에 빠져 있더라도, 그 일 자체를 바꿔서 생각을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부분에 작은 변화를 주어서 실제 내가 원하는 영역에서의 생각의 변화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큰 변화라고 해서 대단한 조치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인지 체계를 가졌고 늘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면 좀 더 나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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