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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상담/심리학

사람들 속에 살면서 살아가는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by 달팽이상점 2022. 8. 2.

성격에 관한 아들러의 관점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타고나는 것이라면 바꿀 수 없을 테고, 그렇다면 교육도 치료도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양쪽 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러는 사람들이 성격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의 선택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모두 나름대로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메리트가 없다면, 아무 성격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격을 스스로 선택했다면 바꿀 수도 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말입니다. 성격이 달라져 버리면 앞으로의 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만약 밝은 성격을 선택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게 될까요?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타인과 관계 맺으면 어떤 형태로든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남에게 심한 말을 듣고 상처받는 일도 생길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기 위해 어둡고 소극적인 성격을 선택합니다. '나도 나를 좋아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겠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격은 이처럼 대인관계 속에서 선택되는 것입니다. 가족 앞에서, 친구 앞에서, 직장 상사 앞에서 우리는 미묘하게 혹은 상당히 달라집니다. 따라서 대인관계를 떠나서 성격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질투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자신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요. 가만있으면 상대의 마음이 나한테서 멀어져 다른 사람한테 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무슨 수를 쓰든 붙잡아두려고 하겠죠. 마음이 그런 상태일 때는 상대에게서 예상을 뒷받침하는 듯한 말과 행동만 보입니다. 자신을 불신하면, 상대의 모든 행동이 조만간 떠나버리리라는 확신을 뒷받침하는 언행으로 비치고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나일뿐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자라난 사람은 '지금 이대로의 나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일 뿐입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상대가 이런 나를 받아들여 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온전히 상대에게 맡길 것. 사랑받기 위해 상대의 기대를 채워준다고 한들 그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니니까요. 두 번째로 나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은 상대에게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있는 그대로의 나'라도 괜찮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자신감'이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떨 때 가장 자연스러울까요? 아마도 특별히 애쓸 필요가 없을 때일 것입니다. 편안한 사람의 곁에 있다면 딱히 근사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 앞에서는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거나 자신감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왠지 엄청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오해가 생길지도 모릅니다만, 그게 아니라 '이 사람 앞에서는 멋진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괜찮구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허영심도 질투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목표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대인관계 같은 인생의 난제에서 도망치려는 마음이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감정을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치려는 결심의 버팀목으로 삼을 때가 있습니다. 타인과의 유대가 없으면 관계 때문에 생기는 마찰도 없으니 더 살기 쉽고 편하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리면 애당초 행복한 삶은 불가능해집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의 고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 상처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찰을 피하고 싶어서 대인관계에서 도망치려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들러는 "살아가는 기쁨"이라는 표현도 사용했습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행복해지는 것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아들러는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배제" 시켜버리면 살아가는 기쁨이나 행복 또한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에 "평화로운 삶과 성과를 얻을 만한 행동의 기초를 획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고 한 것입니다. 

 

삶의 기쁨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해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들러는 기본적으로 '대인관계' 속에서 고민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지금도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보고 있습니다. 쉽게 불안해지는 사람은 싫은 소리를 들었거나 상처 입은 탓에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인관계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결단한 단계에서 이미 주위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다른 사람을 '동료'가 아니라 '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남의 말이나 행동에서 자기에 대한 적의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삶의 기쁨을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대인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한 불안은 쓸모없어집니다. 이에 아들러는 "불안은 개인을 공동체와 연결하는 유대에 의해서만 제거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비교적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그렇게 되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꾸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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