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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상담/심리학

적극적 상상의 힘으로 무의식과 조화를 이루면 됩니다

by 달팽이상점 2022. 7. 22.

적극적 상상이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일부를 고의로 드러내는 일에는 고결한 역사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그것은 시인, 성직자, 예술가, 현자의 소명이었습니다. '적극적 상상'이란 자기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말을 거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그림자에 말을 걸어서, 경험을 형성하는 무의식적인 패턴을 바꾸는 것입니다. 적극적 상상 안에서 우리는 무의식에서 나오는 이미지와 목소리를 감지하고 대화를 유도하여 그 전제와 의도를 살핍니다. 자신의 내적 패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그래서 그 패턴이 반사적으로 삶에 끼어들지 않게 되면, 우리는 그것과의 대화를 통해 변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내 안의 누구 또는 무엇이 이 대화에서 목소리를 내는가? 콤플렉스를 인격화하여 논쟁을 벌이는 거십니다. 인지하지 못하면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꿈이나 수동적 환상에서와 달리, 적극적 상상에서는 자아가 실제로 대화에 참여합니다. 자아의 의식적 참여로 이 기술은 한층 더 유효하고 강력해집니다.

 

적극적 상상의 힘

사람들은 기도나 명상 같은 영적 수련을 통해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적극적 상상은, 보이지 않지만 삶에 영향을 끼치는 힘과 연결되기 위한 현대식 수련법입니다. 사실 이 수련법에 대해 운을 떼기에 적당한 방법은 딱 하나뿐인데, 바로 성경 구절을 살짝 비트는 것입니다. '네가 곧 내디딜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적극적 상상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적극적 상상과 꿈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를 보살피는 것보다 더 신과 가까이 소통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적극적 상상은 신령한 힘을 신중히 헤아리는 새로운 형식의 기도입니다. 신령함이란 영적인 정신 상태나 신비감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신성한 체험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각자의 신을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적극적 상상과 비슷한 명상을 사용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의 인도를 구하고자 할 때, 신을 형상화한 물체 앞에서 기도를 올리면 신이 듣는다고 믿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신상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뜨거나 감거나 어떤 식으로든 응답할 때까지 지그시 응시했습니다. 신상 앞에 인간의 양식을 공물로 놓아두기도 했습니다. 천상의 신들에게는 빵과 케이크, 과일, 포도주를 바쳤고, 지하의 신들에게는 꿀 케이크와 함께 우유와 꿀과 물을 섞은 음료를 바쳤습니다. 염소나 닭, 소 같은 동물을 희생하여 바칠 때는 향을 함께 피웠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화에는 신을 기리는 연회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대의 풍습은 적극적 상상의 훌륭한 본보기입니다. 고대인들은 자신의 내면과 대화할 줄 알았지만, 스스로 지적 수준이 더 높다고 믿는 현대인은 내면과 소통하는 대신 콤플렉스와 신경증에 시달립니다. 고대의 신상과 신탁, 성물과 성소는 길잡이를 간구하는 이의 무의식적 에너지에 기준점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의 기준점은 무엇입니까? 적극적 상상은 '미지의 존재'를 탐색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미지의 존재란 바깥 세계의 신령한 무엇일 수도 있고 자기 내면의 심리적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적극적 상상의 핵심 목표

현대인은 상징적 삶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업신여기는 상징적 삶은, 오히려 귀 기울여 경청해야 마땅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적극적 상상은 '살지 못한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장 좋은 과제로, 대부분은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실은 대체로 혼자 해야 하는 작업인데, 훈련이 필요합니다. 과학보다 예술에 가까운 이 기술을 연마해 주기적으로 실행해보십시오. 우리의 내면에는 실로 많은 보물이 묻혀 있습니다. 적극적 상상을 올바로 실천할 때, 우리는 깨져 흩어졌거나 서로 충돌하는 내면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합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는 상상에 대한 집단적 선입견이 팽배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도 이러한 선입견이 드러납니다. "그건 그냥 네 상상일 뿐이야." "이건 진짜가 아니야. 다 내가 지어내는 거지." 상상은 허구라는 통념이 있어서, 사람들은 내면의 경험을 '그냥 혼잣말인걸' 또는 '어차피 상상인데 뭐, 의미 없어'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떨쳐내려고만 합니다. 사실, 누구도 상상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상상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의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물론 내적 경험은 확실히 상징적이지만, 그 상징을 통해 우리는 더 깊고 위대한 자신을 체험하게 됩니다.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상징 행위는 보이지 않는 심리 에너지를 의식이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로 바꿉니다. 적극적 상상 속에서 우리는 단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의 드라마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자신의 어떤 면면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기도 합니다. 적극적 상상은 우리의 외적 존재와 단단히 얽혀 있고, 개인을 초월하는 힘과 우리를 이어주며,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매우 한정적인 사건들보다 더 깊은 차원의 현실을 건드립니다. 건강한 자아의 필요성을 없앨 수 없듯이 우리는 내면의 모습을 제거할 수 없지만, 이 둘 간의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화합으로 이끌 수는 있습니다. 일정 기간 상상의 대화를 실천하다 보면 그림자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알아채기 시작할 것입니다. 대개 우리가 '그저' 기분 탓이라고, 우연이나 사고라고, 남들이 우리를 조종하려 드는 것이라고 일축해버릴 뿐입니다. 삶의 이면은 언제나 존재하며 우리와 소통할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 이면의 존재가 놀랍지 않다면 그건 딱히 이면이 아닙니다. 빛과 그림자, 신성함과 속됨, 선과 악. 우리는 저마다 내면에 놀라운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적극적 상상의 핵심 목표는 무의식 속 존재들과 불안한 선택이 불러오는 신경증적 압박을 덜어내고, 그것을 의식 차원으로 옮겨 대극의 쌍이 나는 화합의 대화이자 천상의 노래로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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